옳은 의견을 아뢰는 것의 지극한 어려움

1
신 비(한비)가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말하길 꺼리는 이유는, 말이 거슬리지 않고 아름답고 윤기가 나면서 성대하게 끊이지 않으면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이 보이고, 매우 정중하고 공손하면서도 강직하고 완고하여 신중하면 서투르고 조리가 없어 보이며, 말을 많이 하고 번잡하게 일컬으면서 비슷한 유형의 사례를 들며 비교하고 헤아리면 허황되고 쓸모가 없다고 여기며, 심하게 친근하게 굴면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더듬어 살피면 주제넘고 겸손하지 못하다고 여기며, 너무 크고 넓어서 미묘하고 심오하며 헤아릴 수 없으면 공허하여 쓸모가 없다고 여기며, 집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듯 자잘하게 말하면서 자세한 수치를 들어 말하면 비루하다고 여기며, 말하는 것이 세속적이면서 남의 비위를 맞추고 거스르지 않으면 삶을 탐하여 위에 아첨한다고 여기며, 말하는 것이 세속을 넘어서 일상에 반하는 내용을 떠들면 거짓이라고 여기며, 민첩하고 기민하게 말을 보태면서 문체를 더하길 번잡하게 하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같이 말이 많다고 여기며, 문장이나 학문을 끊어 버리고 있는 본질과 바탕을 말하면 비천하다고 여기며, 때때로 <시>와 <서>를 들먹이며 지나간 옛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외우기만 한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신 비(한비)가 말하기 어렵고 크게 걱정스럽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2
대저 법이 비록 올바르다 해도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가 비록 완전하다 해도 반드시 쓰이질 않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이처럼 믿지 않으시면 작게는 헐뜯고 남을 비방한다 생각하시고, 크게는 재앙과 재해, 죽음이 그의 몸에 미칩니다.
그러므로 자서는 계략을 잘 꾸몄지만 오나라는 그를 죽였고, 중니는 언변이 훌륭했지만 광땅의 사람들은 그를 구금하였으며, 관이오는 정말로 현명했지만 노나라는 그를 잡아 가두었습니다.
이 세 대부가 어찌 현명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세 나라 군주가 사리에 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탕은 지극히 훌륭한 성인이었고, 이윤은 지극히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대저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히 훌륭한 성인을 설득하였는데 무려 70여 차례를 설득하고도 받아들여지질 않아서 몸소 솥과 도마를 쥐고 요리사가 되어 가까이 친숙해진 후에야 탕왕은 비로소 그의 현명함을 알고 등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길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이 지극히 훌륭한 성인을 설득해도 반드시 이르러 받아들여지지 않음은 이윤이 탕왕을 설득한 경우이고,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설득해도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음은 문왕이 주를 설득한 경우이다’라고 합니다.
문왕은 주를 설득하려 했지만 주는 그를 잡아 가두었고, 악후는 불에 타죽는 형벌을 당하였고, 구후는 시신이 포로 뜨여 햇볕에 말리는 형벌을 당하였고, 비간은 심장을 찢기었고, 매백은 소금에 절여지는 형벌을 당하였으며, 이오는 몸이 결박당하였고, 조기는 진나라로 도망쳤고, 백리해는 길에서 구걸하였고, 부열은 이리저리 팔려다녔으며, 손빈은 위나라에서 다리를 잘렸고, 오기는 안문에서 눈물을 닦으며 서하가 진나라에 빼앗길 것을 통탄하였으나 끝내 초나에서 사지가 찢겼고, 공숙좌는 국정을 관장할 인물을 추천하였지만 도리어 그르다 하여 공손앙이 진나라로 도망갔으며, 관용봉은 하나라의 걸을 간하다가 목이 베였고, 장광은 창자가 갈렸고, 윤자는 가시덤불로 된 함정에 빠졌고, 사마자기는 죽어서 강에 던져졌고, 전명은 시신이 찢기고, 복자천과 서문표는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손에 죽었고, 동안우는 죽어서 저잣거리에 시신이 전시되었고, 재여는 전상에게 죽음을 면치 못하였으며, 범저는 위나라에서 갈빗대가 부러졌습니다.
이처럼 십수 명의 사람들 모두 어질고 지혜로우며 충직하고 선량한 도리와 재주를 지녔지만 불행하게도 포악하고도 우매한 군주를 만나 죽었습니다. 이처럼 비록 현인이나 성인일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욕됨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어리석은 자를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말하길 꺼려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치에 지극히 합당한 말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어긋나서 현인이나 성인의 자질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으니 바라건대 대왕께서 깊이 살피어 주시기 바랍니다.


‘난언’이란 편명은 신하가 왕에게 ‘진언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신하가 군주에게 진언하기 어려운 이유와 군주가 신하의 진언을 평가하는 단점에 대해 말한 후, 이를 논증하기 위해 현명한 신하가 미혹된 군주에게 오해받아 죽거나 현명한 자들이 곤경에 처했던 역사적 사례를 들고 있다.

<한비자 정독> 김예호 역주, 제 3장 난언



물질 문명말고 인간과 인간사회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약 20년전 인터넷이 깔리고, 10여년전 스마트폰이 나와서 하루하루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한비자> 같은 인문 고전을 읽으면 물질이 풍요로워졌고 과학 기술만 발전했지 인간과 인간사회는 2500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놀랍고 인문서적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사장, 임원, 실장, 팀장, 리더, 어느 자리에 있던지 회사나 조직에서는 싫든 좋든 상사를 만나게 된다. 내가 선택할 수도 없다. 아녀자는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 직장인은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말을 수십년 경험으로 절절히 느낀다. 그 상사가 한비가가 말한 군주라고 생각하면, 한비자의 말이 구구절절 와 닿는다. 회사에서 바른 소리 좀 한답시고 직언했다가, 회사를 위한 뜨거운 충정을 참지 못하고 충언을 했다가 미움받고, 고과 깔고, 면직되고, 한직으로 물러나고, 심하게는 짤린 경우도 봤다.

현명한 군주(상사)도 설득하기 어려운데, 특히 사리분별이나 이해판단에 어두운 어리석은 상사를 설득하려 하지 마라. 조직을 위한, 사업의 성공을 위한 충언이랍시고 내 밷지 마시라. 지극히 합당한 말은 귀에 어긋나고 마음에 어긋나서, 내가 물려 죽을 수 있다. 고언은 입에 쓰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도 그 말은 한 놈은 미운 법이다.

그래도 총대를 멜 것인가?

The short URL of this article : https://day1ers.com/QJO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