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3 :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입사하고 10년쯤 되었을 무렵 면직책이 되고 한직으로 밀려난 적이 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Mr.쓴소리였고 회사의 바르지 않은 결정에 대해서는 임원에게까지 ‘그러면 안된다’고 대들듯 주장을 하곤 했다. 내가 보기에는 임원의 결정이, 회사가 추진하는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30대 중반의 나는 혈기왕성했고 맞지 않은 처사에 대해서 쉽게 분노하고 의견을 주장했다.
그러다가 그 사단이 난 것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참을 생각하던 무렵, 잡은 책이 사마천의 <사기>였고 , 2700여년전 이야기가 마치 지금 회사 상황을 그려 놓은 것 같았고 나의 부족했음을 절절하게 느꼈다. 사마천 사기,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를 읽으며 특히 와 닿았던 대목들을 말씀 드린다.

사마천 사기3. 참으로 굽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호랑이의 입 속에 있을 때는


숙손통은 진나라 2세황제(호해) 때에 학식을 인정받아 등용되었다. 몇 년 뒤 진승이 산동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2세 황제는 즉시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 초나라 지방에서 진승의 무리가 군사를 일으켜 소란이 일어 났다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좋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30여 명의 신하들이 일제히 말했다.
”신하된 자로서 반역을 하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기만 해도 반역죄에 해당됩니다. 단호하게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당장 군대를 파견해 진압하십시오.“
2세황제는 반역이라는 말을 듣자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때 숙손통이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잘못입니다. 지금 온 천하가 한 가족이나 다름 없습니다. 성벽은 허물어졌고 무기는 모두 녹였으니 이제 전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애로우신 황제 폐하의 은총으로 모든 법령이 충실히 지켜지고, 모든 백성들은 각기 맡은 직분에 충실합니다. 이와 같은 태평성대에 어떻게 반역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진승이라는 작자는 한낱 도적떼에 지나지 않을 뿐이므로 폐하께서는 신경쓰실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금방 관리들이 모조리 일망타진해 처벌할 것입니다.“
그러자 2세황제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는 신하를 한사람 한사람씩 불러 의견을 물었다. 의견은 반역설과 도적설로 나뉘었다. 다 듣고 난 2세황제는 반역설을 이야기한 신하들을 모두 옥리에게 넘겨 취조하게 했다. 반면 도적설을 말한 신하들은 위로했고, 특히 숙손통에게는 비단 20필과 의복을 내림과 아울러 박사로 승진시켰다. 숙손통이 궁궐에서 나오자 동료들이 비꼬았다.
”아니, 어떻게 그 정도로 아부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오?“
그러자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 호랑이 입 안에 있지 않소? 내가 그렇게 아부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무사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그리고 바로 고향인 설 땅으로 도망쳤다. 

난세에는 용사가 필요하다.


숙손통이 설 땅에 가 보니 그곳은 이미 초나라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항우를 모시게 되었다. 그 뒤 유방이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에 들어오자 숙손통은 다시 유방 진영에 가담하였다. 숙손통은 원래부터 유학자로서 선비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이 선비옷을 싫어하자 곧 그 옷을 벗어 버리고 짧은 옷으로 갈아 입었다. 유방이 그 사실을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또 숙손통이 유방 진영에 가담했을 때 제자 백여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구도 유방에게 천거하지 않았다. 대신 도적질을 했던 자나 건달들만 자꾸 추천했다. 이에 제자들이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저희는 선생님께 여러 해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당연히 저희들의 앞길을 열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건달, 깡패만 계속 추천하고 계시니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이 대답했다.
“지금 대왕께서는 싸움터를 전전하며 화살과 칼을 무릅쓰고 다니신다. 학자들이란 전투엔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적의 머리를 베어 올 수 있는 용감무쌍한 자들을 추천하는 것이다. 너희는 좀 기다리도록 해라.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숙손통은 용사들을 추천한 공로로 벼슬이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수성에는 학자가 중요하다.


드디어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다. 숙손통은 황제 즉위식의 책임을 맡아 잘 처리했다.
유방은 진나라의 번거로운 의식을 모두 없애 버리고 대폭 간소화하고자 했다. 의식과 규율이 간소화되자 신하들은 제멋대로 술을 마시고 서로 공적을 다투었으며, 싸움을 벌이고 심지어 칼을 빼어 들고 궁궐기둥을 치는 자까지 나왔다. 사태가 이쯤 되자 유방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때 숙손통이 유방에게 아뢰었다.
“학자란 건국 사업에는 별 소용이 없지만, 나라를 유지시켜 가는 수성에는 매우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 바라옵건대 학식이 높은 노나라 학자들을 초청하여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식을 제정했으면 합니다.”
“괜찮은 생각인데 너무 어려운 일 아니오?”
그러자 숙손통이 말을 이었다.
“의식이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풍속에 따라서 간단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하/은/주의 의식은 각각 이전의 의식을 따르면서 취사선택했다’는 공자의 말씀도 어느 나라에나 똑같은 의식은 없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저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의식에 진나라의 의식을 가미해 우리 나라의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좋소, 한번 만들어 보오. 하지만 알기 쉽게 만드시오.”
그 뒤 숙손통은 노나라에 가서 30명의 학자를 초청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거절하면서 숙손통을 비난했다.
“당신은 벌써 열 명도 넘는 주군을 섬기면서, 그때마다 면전에서 아부하며 중용되었소. 이제야 비로소 천하가 평정되었지만, 아직 전사자의 장례도 끝나지 않았고 부상자들은 완치되지 못했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악을 찾을 수 있단 말이오? 본래 예악이라는 것은 황제가 백 년 이상 덕을 쌓아야 비로소 일어나는 법이오. 그러니 당신이 하는 일에 찬성할 수 없소.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옛날의 법에 맞지 않는 일이오. 그냥 돌아가시오. 더 이상 우리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그러자 숙손통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는 고루한 선비들이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데.” 

황제의 자리가 이렇게 귀할 줄이야


숙손통은 노나라 학자 30여 명을 대동하고 궁궐로 돌아왔고 그는 궁중의 학자들, 그리고 자신의 제자 백여 명과 함께 야외에서 한 달에 걸쳐 의식을 만들고 실제 모의 훈련도 했다. 그런 뒤 숙손통은 황제에게,
“폐하, 한 번 구경해 보십시오.”라고 청했다.
유방이 실제로 그 의식 절차를 보더니,
“잘 만들었소. 그 정도면 나도 황제 노릇을 잘할 수 있겠소.”하는 것이었다.
그 뒤 장락궁이 준공되자 만조 백관들이 그 의식에 따라 입조했다. 뜰 한가운데는 경비병들이 무기를 갖춘 채 줄을 지어 서 있고, 궁전 밑에는 계단마다 수백 명의 호위 군사가 늘어서 있었다. 공신/제후/장군들이 서열에 따라 서쪽에 줄을 지었으며, 문관들은 승상 이하 서열대로 동쪽에 줄을 지어 섰다.
드디어 황제가 탄 수레가 나오자 백관들이 깃발을 흔들어 환영했다. 황제가 자리에 앉자 6백 명 이상 되는 고관들이 차례로 어전에 나가 축하했는데 모두 엄숙한 표정이었다. 하례가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다시 엎드려 모리르 조아렸고, 서열에 따라 일어나며 축배의 술잔을 올렸다. 의식이 끝나고 다시 주연이 베풀어졌으나 시끄럽게 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유방은
“오늘에야 비로소 황제의 자리가 고귀함을 알았노라.”하며 숙손통을 의전 장관에 임명하고 황금 5백근을 하사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숙손통이 말했다.
“저의 제자들은 오랫동안 저를 따르며 함께 의식을 만들었습니다. 바라옵건대 그들에게도 관직을 내려 주십시오.”
유방은 즉시 그들을 모두 시종에 임명했다. 숙손통은 궁궐에서 나오자 하사받은 황금 5백근을 모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진정 성인이시다. 세상사를 꿰뚫어 보신다.”
그 후 숙손통은 태자의 교육 담당으로 옮겼다. 그 무렵 유방은 사랑하는 척희의 아들인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자 숙손통이 유방을 찾아가 비판하였다.
“옛날 진시황은 큰 아들 부소를 태자로 세우지 않아 결국 조고 등이 호해를 내세워 음모를 꾸몄고, 그 때문에 나라까지 망했습니다. 지금 태자의 인덕은 모두가 칭송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황후께서는 폐하와 온갖 고난을 함께 겪어 온 조강지처이옵니다. 절대 배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태자를 바꾸셔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저를 죽이시고 그 피로 궁전의 땅을 더렵힌 후에 하십시오.”
그러자 유방이 적당히 무마하려고 했다.
“알았소, 그만두시오. 내가 농담으로 해 본 얘기요.”
그러자 숙손통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태자를 세우는 문제는 천하의 근본인데 어찌 천하 대사르 농담으로 하실 수 있습니까? 근본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리는 법입니다.”
“이제 됐소. 그대의 말이 맞소.”
그 후 궁중의 주연이 열렸을 때 장량이 초대한 도사 네 명이 태자와 함께 나타나자, 유방은 태자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깨끗이 단념하게 되었다. 실로 숙손통은 항상 아첨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비판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았으며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 적응해 나갔던 것이다.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그 후 유방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혜제의 시대가 되었다. 어느 날 혜제가 숙손통을 불렀다.
“이 나라에 의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구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다시 의전 장관을 맡으셔야 하겠소.”
그리하여 숙손통은 의전 장관으로 복귀했다. 결국 그에 의해 종묘 사직의 의식들이 모두 완성되었으며, 한나라의 모든 예법이 이때 정해졌다.
한편 혜제는 장락궁에 있던 어머니 여후에게 아침마다 문안을 드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교통이 통제되어 백성들의 피해도 컸다. 그래서 생각 끝에 이층으로 길을 내어 궁궐 담 위로 쉽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하루는 숙손통이 혜제에게 말했다.
“폐하, 무슨 연유로 이층길을 내셨습니까? 그래서 선제의 묘 위로 지나다니도록 되지 않았습니까? 나라의 시조를 모시는 종묘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자 혜제는 크게 두려워해,
“그럼 빨리 허물어 버리도록 하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숙손통은 또다시 말하였다.
“그것은 안됩니다. 황제께는 잘못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 와서 허물어 버리면 폐하께도 잘못이 있음을 천하에 알리는 결과가 됩니다. 이번 기회에 종묘를 위수 북쪽에 새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종료를 넓히고 많이 짓는 일은 큰 효도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들은 혜제는 숙손통의 지혜에 감탄하며 즉시 새 종묘를 만들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이층길은 새 종묘를 짓기 위한 꼬투리가 되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천금의 값이 나가는 가죽 옷은 여우 한 마리의 털로 만들 수 없고, 높은 누대의 서까래는 나무 한 그루로 만들 수 없다.‘

하/은/주의 성대함은 한두 사람의 지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유방이 미천한 신분으로 몸을 일으켜 천하를 평정했는데, 그것은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합해진 결과이다. 숙손통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으로 사물을 잘 판단하였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고 의식을 제정하여 한나라 유학의 거장이 되었다. 그의 처세 또한 진퇴의 절도를 잘 지켰으며, 시대의 흐름에 적절히 대처하였다. ’참으로 곧은 것은 굽어 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한 것이다.‘라는 말은 바로 숙손통의 경우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사기3> 서해문집, 김진연 편역, 숙손통 편
참고 중국역사요약 : 하>은>주>춘추전국시대(공자, 맹자, 제자백가)>진(시황제)>한(항우, 유방, 소설 초한지)>삼국시대(위,촉,오 소설 삼국지)>위진남북조>수>당>5대10국>송>원>명>청>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1.
진나라 2세 황제 ‘호해’는 진나라 시황제(진시황제)의 후궁에게서 태어난 18번째 아들로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의 모략으로 갑자기 왕이 되며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에 나오는 왕이다. 한마디로 잔인하고 무능한 왕(CEO?) 이었다. 당시 진승의 난이 심상치 않은 반역이라는 말을 듣고 언짢해하는 황제의 표정을 보고 숙손통은 별거 아니며 황제가 신경쓸 것도 아니라며 안심을 시킨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CEO, 임원, 상사의 표정을 항상 살펴야 한다. 그 결과로 바른 소리를 한 신하들은 죽임을 당하지만 숙손통은 인센티브를 받지 않았는가. (만약 내가 당시 조정에 있었다면 경영회의 마치고 그날 밤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2.
유방이 선비 옷을 싫어한다는 것을 듣고 바로 짧은 옷으로 갈아 입었다는 대목도 많이 와 닿았다. 상사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 바로 변신해야 한다. 내 고집, 취향은 회사 밖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자들의 칭얼거림을 듣지 않고 상사가 필요한 것, 용사, 을 제공한 것도 그렇다. 중간관리자라면 팀원보다는 상사의 Needs에 맞춰야 한다.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면 안된다.

3.
의전 의식을 새로 Setup한 이야기도 현실 회사 생활과 맞아 떨어진다. 기존 경험으로는 최소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는 안된다. 최소 이 정도 인원은 있어야 된다는 둥, 예전 경험에 사로잡혀 안되는 이유만 대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핏대 세우며 그랬다. 하지만 누군가는 과감하게, 바꾸고, 버리고, 새로 붙여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숙손통은 황금 5백 근의 인센티브와 자신의 팀원을 다 승진시키지 않았는가.

4.
한나라 2대황제(혜제)와 이층 문안길을 두고 있었던 일도 현실감이 있다. 만약 숙손통이 이층길이 법도에 맞지 않으니 당장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얼마 후 사약을 받았을 것이다. 숙손통은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서 황제(CEO)에게 더 큰 신임과 신뢰를 받는다. (승진과 함께 장기근속도……)

5.


참으로 곧은 것은 굽어 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한 것이다.

회사 생활, 조직 생활 잘 하려면 자기 고집 버리고 상황에 맞춰 유연해야 한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오래 가는 놈이 강하다고 했다. 풀처럼 엎드려 바람 따라 사는 것도 괜찮다.

사마천 사기2 : 진실로 용기 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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